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시몽 드 몽포르 (문단 편집) === 왕당파의 반격 === 1265년 5월, 왕자 에드워드는 런던의 감금지에서 탈출하였고 서쪽의 웨일스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 군대를 꾸렸다. 이러한 상황에서 시몽의 동맹이자 1263년의 봉기 시에 귀족들의 대표였던 글로스터(Gloucester) 백작 길버트 드 클레어(Gilbert de Clare)가 점점 커지는 시몽의 권력을 시기하여 [[왕당파]]로 전향해 버렸다.[* 애초에 에드워드의 탈출을 도운 사람이 길버트다.] 한편 시몽은 북부 웨일스의 지배자 리웰린에게서 지원받은 보병을 포함하여 군대를 편성했는데, 이 때문에 귀족들과 시민들은 그가 외세의 간섭을 자청한 것이라고 여겨 지지를 철회했다. 1265년 6월 29일, 글로스터의 시몽 군대를 격파한 에드워드의 왕당파는 시몽의 본거지인 [[레스터]]를 향해 북진하였다. 이에 시몽은 런던에 있던 아들 시몽[* 아버지 시몽 드 몽포르와 [[동명이인]]이다.]에게 군대를 이끌고 북상하게 하였는데, 아들 시몽이 늑장을 부렸다. 반면에 에드워드는 귀족들을 규합하여 매우 빠르게 진군하였고, 글로스터와 레스터 사이에 있는 [[코번트리]][* 정확히는 시내 남서쪽의 케닐워스]에 도달하였다. 그곳에는 시몽 측의 요새가 있어 아버지 시몽도 하는 수 없이 홀로 출정하여 왕당파와 대치하였다. 에드워드의 군대는 수적 우위를 이용하여 시몽의 군대를 격파하고 남하하였는데, 전투에서 전리품으로 얻은 깃발들을 내세워 (지원군으로 착각한) 시몽 측의 요새들에 무혈 입성하고 속은 귀족들을 포로로 잡았다. --페이크닷-- 그리고 에드워드는 런던-레스터 사이의 강들을 건너야 했던 아들 시몽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다리들을 파괴하여 시몽 부자의 군세가 합치는 것을 지연시켰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